하나님의 복이 느껴지지 않을 때 추천 설교 | 옥한흠 목사 「복을 받은 사람, 오벧에돔」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도 삶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기도해도 형편은 그대로이고, 열심히 살아도 기대했던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마음 한편에서는 이런 질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나는 왜 하나님의 복을 받지 못하는 것 같을까?”
특히 주변을 돌아보면 더 그렇습니다. 누군가는 사업이 잘되고, 누군가는 좋은 집을 마련하고, 누군가는 자녀가 잘되고 건강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하나님의 복을 돈과 성공, 건강과 형통이라는 기준으로만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정말 성경이 말하는 복은 그것뿐일까요?
사랑의교회 옥한흠 목사의 「복을 받은 사람, 오벧에돔」은 사무엘하 6장 9~15절에 등장하는 오벧에돔을 통해 복의 근원이 누구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누리는 진짜 복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하게 하는 설교입니다.
설교의 핵심은 단순히 “하나님을 잘 섬기면 모든 일이 잘된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복의 기준’ 자체를 성경 앞에서 다시 세우도록 이끌어가는 메시지에 가깝습니다.
📌 설교 정보
설교자 : 옥한흠 목사
교회 : 사랑의교회
원본 설교 제목 : 복을 받은 사람, 오벧에돔
설교일 : 2005년 11월 27일
성경 본문 : 사무엘하 6:9~15
이 설교가 필요한 순간 : 하나님을 믿고 있는데도 내 삶에는 하나님의 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
참된 복은 세상적인 형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신령한 복,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족의 복,
그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수고의 열매를 누리는 것입니다.
🔑 핵심 메시지
1. 삶이 힘들수록 ‘복의 근원’을 바라봐야 합니다
옥한흠 목사는 설교를 시작하면서 삶이 힘들고 절박할수록 우리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합니다.
형편이 어려워지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돈과 환경, 사람과 해결책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나 설교자는 그럴수록 세상만 바라보던 눈을 돌려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시편 16편과 73편이 보여주는 복의 관점도 이와 연결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많이 받은 사람만 복 있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하고 하나님을 자신의 가장 큰 선으로 고백하는 삶 자체를 복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복에 대한 매우 중요한 방향 전환입니다.
우리는 보통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시면 복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보다 먼저 “하나님을 얻은 사람이 이미 복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삶이 어려울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세어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누구를 붙들고 있는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2. 오벧에돔의 집에 들어온 법궤가 의미하는 것
사무엘하 6장의 배경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있습니다.
언약궤는 단순한 종교 장식품이나 복을 가져다주는 행운의 물건이 아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약궤는 하나님의 언약과 임재를 상징하는 매우 중요한 존재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 했습니다. 하지만 운반 과정에서 웃사가 궤를 붙들었다가 죽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이 사건을 경험한 다윗은 큰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결국 언약궤를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옮기지 못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머물게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언약궤가 오벧에돔의 집에 머문 기간은 불과 석 달이었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셨다고 기록합니다.
그 소식은 결국 다윗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언약궤 자체에 어떤 신비한 힘이 있어서 오벧에돔을 부자로 만들어주었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님이 계십니다.
오벧에돔의 집에 들어온 것은 단순한 상자가 아니라, 그 언약궤가 상징하고 있던 하나님의 임재였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도 질문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선물을 원하는가, 아니면 하나님 자신을 내 삶의 중심에 모시기를 원하는가?”
3. 아비나답의 집과 오벧에돔의 집이 주는 강렬한 대조
옥한흠 목사는 설교에서 아비나답의 집과 오벧에돔의 집을 대조하여 설명합니다.
언약궤는 오벧에돔의 집에 오기 전 오랜 기간 아비나답의 집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설교자는 오랜 기간 법궤를 곁에 두었던 아비나답의 집과 불과 석 달 동안 법궤를 모셨던 오벧에돔의 집을 비교하면서 하나님을 가까이 두고 있다는 외적인 사실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여기서는 성경 본문과 설교자의 적용을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 자체가 “아비나답의 집은 하나님의 복을 전혀 받지 못했다”고 직접 선언하는 것은 아닙니다.
옥한흠 목사는 이 차이를 설교적으로 활용하여 하나님을 오랫동안 가까이 두고도 익숙함과 타성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경고합니다.
이것은 오래 신앙생활한 사람일수록 생각해볼 만한 질문입니다.
교회를 10년, 20년, 30년 다녔다는 사실이 곧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고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예배에 익숙해질 수 있고, 찬송에 익숙해질 수 있으며, 성경 말씀에 익숙해질 수도 있습니다.
처음에는 감사했던 것이 어느 순간 당연해지고, 처음에는 기쁨이었던 예배가 의무가 되고, 처음에는 은혜였던 봉사가 부담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가 던지는 질문은 “얼마나 오래 믿었는가?”보다 “지금 나는 하나님을 어떤 마음으로 모시고 있는가?”입니다.
4. 오벧에돔의 복을 단순한 ‘물질 축복’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사무엘하 6장만 보면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오벧에돔이 하나님을 잘 모셨더니 복을 받았으니, 나도 하나님을 잘 섬기면 돈도 많이 벌고 모든 일이 잘되겠구나.”
그러나 옥한흠 목사는 여기에서 복의 의미를 더 깊은 차원으로 확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고 하나님 나라가 선포된 이후 성도는 복을 단순히 물질과 건강, 장수와 성공의 기준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4장 17절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을 먹고 마시는 외적인 조건에 두지 않고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에 둡니다.
그렇다고 물질이나 건강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생활에 필요한 공급도 감사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을 복의 기준으로 삼기 시작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부유하면 하나님께 복을 받은 사람이고 가난하면 복을 받지 못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십자가를 지고 고난을 감당했던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을 설명할 수 없게 됩니다.
그래서 이 설교에서는 하나님 나라 안에서 성도가 누리는 참된 복이 무엇인가를 세 가지 방향으로 풀어갑니다.
5. 첫 번째 복 —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첫 번째는 에베소서 1장 3절이 말하는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입니다.
옥한흠 목사는 세상의 부귀영화나 어떤 놀라운 기적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이 성도에게 주어진 가장 큰 복이라는 방향으로 설명합니다.
왜 이것이 가장 큰 복일까요?
돈은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건강도 변할 수 있습니다. 직장과 사업의 형편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인정 역시 언제든 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을 얻은 은혜는 세상의 조건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할 수 없습니다.
성경적 관점에서 보면 성도가 가장 먼저 세어야 할 복은 통장에 있는 숫자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가입니다.
그래서 지금 삶의 형편이 좋지 않다고 해서 “나는 하나님께 아무런 복도 받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은 은혜를 다시 발견할 때 우리가 복을 바라보는 눈 자체가 달라집니다.
6. 두 번째 복 —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하는 복’
옥한흠 목사가 말하는 두 번째 복은 자족할 수 있는 복입니다.
여기에서 빌립보서 4장에 나타나는 바울의 고백이 중요하게 연결됩니다.
바울은 모든 일이 잘 풀려서 자족했던 사람이 아닙니다. 풍부함도 경험했고 부족함도 경험했습니다. 배부름도 알았고 배고픔도 알았습니다.
그 모든 상황을 지나면서 어떤 형편에서도 살아가는 비결을 배웠다고 고백합니다.
따라서 자족은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그냥 현실에 체념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하면서도 현재 부족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모든 것을 무가치하게 여기지 않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현실적인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비교하면서 살아갑니다.
누군가의 집, 누군가의 자동차, 누군가의 사업, 누군가의 직장, 누군가의 자녀, 누군가의 성공을 바라보다 보면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족의 복을 누리는 사람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없는 것 때문에 이미 받은 은혜를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입니다.
7. 크로노스와 카이로스 — 내 시간을 하나님의 손에서 바라보기
이 설교에서 놓치면 아쉬운 설명 가운데 하나가 크로노스(Chronos)와 카이로스(Kairos)라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설교자는 자족을 설명하면서 시간을 단순히 흘러가는 연대기적인 시간으로만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다루시는 의미 있는 시간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이야기합니다.
우리는 보통 시간표를 가지고 인생을 판단합니다.
“이 나이면 이 정도는 이루어야 하는데.”
“나는 왜 아직 이것밖에 안 되었을까?”
“다른 사람은 벌써 저만큼 갔는데 나는 왜 이렇게 늦을까?”
이렇게 인생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우리의 시간은 끊임없는 비교와 조급함의 시간이 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내 인생의 시간이 단순히 흘러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사실을 바라보게 합니다.
지금 내가 지나고 있는 기다림도, 뜻대로 되지 않는 시간도, 아직 열매가 보이지 않는 시간도 하나님께서 전혀 사용하지 못하는 버려진 시간이라고 단정할 수 없습니다.
이런 관점은 자족과 깊이 연결됩니다.
“왜 나는 아직 이것밖에 안 되었는가?”라는 질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지금 이 시간을 통해 나를 어떻게 빚고 계시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선을 옮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8. 세 번째 복 — 수고의 대가를 누리는 복
세 번째는 수고가 헛되지 않고 열매를 거두는 복입니다.
여기에서 성경적인 복에 대한 또 하나의 오해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진다는 뜻이 아닙니다.
설교에서 언급되는 시편 126편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을 이야기합니다.
먼저 씨를 뿌리는 수고가 있습니다. 그 다음에 거두는 기쁨이 있습니다.
반대로 시편 127편은 하나님께서 집을 세우지 않으시면 사람이 아무리 애써도 그 수고가 헛될 수 있음을 가르칩니다.
이 두 말씀을 함께 보면 성경이 말하는 매우 중요한 균형이 나타납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씨를 뿌립니다. 그러나 그 씨에 생명을 주고 열매를 허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복 주실 테니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서도 안 되고, 반대로 “내가 열심히 했으니 이 모든 결과는 전적으로 내 능력이다”라고 말해서도 안 됩니다.
수고하되 하나님을 의지하고, 열매를 얻었을 때 감사하며, 아직 열매가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사업과 직장, 공부와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는 요행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오늘 자신에게 맡겨진 씨를 성실하게 뿌리면서 그 결과를 하나님의 손에 맡기는 사람입니다.
9. 하나님을 가까이 두는 것과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은 다를 수 있습니다
다시 오벧에돔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면 설교자가 강조하는 중요한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을 형식적으로 가까이 두는 것과 하나님을 기쁨과 정성으로 모시는 것은 같지 않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오래될수록 이 차이는 더 중요합니다.
주일마다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성경을 읽고, 교회에서 봉사하면서도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을 향한 기쁨이 사라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행동은 남아 있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의무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벧에돔의 이야기를 통해 설교자가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을 내 필요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을 귀하게 여기고 기쁨으로 모시는 태도입니다.
10.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말씀을 오해하지 않아야 합니다
설교의 결론에서는 시편 37편 4절이 등장합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면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내가 하나님을 잘 섬기면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전부 주신다”는 거래의 공식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37편 전체의 흐름은 악인의 형통 때문에 불평하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며 선을 행하고 자신의 길을 하나님께 맡기라는 방향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뻐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소원을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가장 귀한 분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기뻐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소원 자체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단순히 “더 많이 갖게 해주세요”라는 기도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해주세요”라는 기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설교에서 꼭 기억할 세 가지 복
①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한 생명의 소망을 얻은 복입니다.
세상의 형편이 바뀌어도 빼앗을 수 없는 복이며, 성도가 자신에게 주어진 다른 모든 복을 바라보는 기준입니다.
② 자족할 수 있는 복
모든 조건이 완벽해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 안에서 자신의 삶을 바라보며 현재의 형편에서도 감사와 평안을 잃지 않는 복입니다.
크로노스처럼 흘러가는 시간만 바라보지 않고, 내 삶의 시간을 하나님의 손 안에서 의미 있게 바라보는 믿음과도 연결됩니다.
③ 수고의 열매를 누리는 복
요행이나 무임승차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눈물로 씨를 뿌리고 최선을 다해 수고하면서, 그 수고가 헛되지 않도록 붙드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복입니다.
💡 기억할 핵심 인사이트
첫째, 복을 찾기 전에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만 바라보다 보면
정작 하나님 자신을 놓칠 수 있습니다.
둘째, 세상적인 형통만으로 하나님의 복을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구원과 영생, 하나님과의 관계,
성령 안에서 누리는 평안과 기쁨은
돈으로 살 수 없는 복입니다.
셋째, 자족은 포기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노력하면서도
오늘 없는 것 때문에 이미 받은 모든 은혜를 무가치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넷째, 믿음과 수고는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씨를 뿌리는 것은 우리의 책임이고,
그 수고에 열매를 허락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섯째, 신앙의 연수보다 지금 하나님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오래 믿었다는 사실보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기쁨이 지금 살아 있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 오늘의 삶에 적용하기
1. 내가 생각하는 ‘복’을 직접 적어보기
먼저 하나님께 받고 싶은 것을 솔직하게 적어보세요.
건강, 돈, 사업의 회복, 좋은 직장, 자녀의 앞날, 인간관계의 회복처럼 지금 간절하게 원하는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이미 하나님께 받은 복을 적어보세요.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의 은혜, 기도할 수 있는 믿음, 말씀을 들을 수 있음, 오늘 다시 시작할 수 있음, 가족과 공동체, 내게 맡겨진 일과 기회처럼 너무 익숙해서 복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이 보일 수 있습니다.
2. 비교 때문에 빼앗긴 감사를 하나 되찾아보기
다른 사람에게는 있지만 내게 없는 것을 하나 생각해보고, 반대로 지금 내게 주어진 것 가운데 감사할 수 있는 것을 하나 찾아보세요.
자족은 모든 문제가 해결된 다음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남아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3. 결과 대신 오늘 뿌려야 할 씨에 집중하기
결과가 보이지 않아 지쳐 있다면 “언제 열매가 나타날까?”라는 질문만 반복하기보다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나 정해보세요.
사업이라면 오늘 해야 할 정직한 수고, 공부라면 오늘 공부할 분량, 가정이라면 먼저 건넬 따뜻한 말, 신앙이라면 오늘 드릴 기도와 말씀 묵상일 수 있습니다.
오늘 씨를 뿌리는 것은 내가 할 일이고, 그 씨가 어떤 열매를 맺을지는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 무엇을 달라고 하기 전에 하나님을 기뻐해보기
오늘 하루만이라도 기도를 시작하자마자 필요한 것을 요청하기보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먼저 감사해보세요.
“이것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으로 기도를 시작해보는 것입니다.
그 작은 변화가 하나님을 선물의 공급자로만 바라보던 신앙에서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는 신앙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 한 줄 기도
하나님, 세상의 조건만 바라보며 복이 없다고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받은 은혜를 발견하며, 어떤 형편에서도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기쁨으로 가까이하게 해주세요.
🔎 이런 순간에 이 설교를 추천합니다
✔ 하나님을 믿는데도 내 삶에는 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
✔ 다른 사람의 성공과 내 형편을 비교하며 낙심할 때
✔ 경제적인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까지 의심하게 될 때
✔ 열심히 노력하지만 좀처럼 결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
✔ 오래 신앙생활했지만 예배와 기도가 의무처럼 느껴질 때
✔ 돈과 성공을 하나님의 복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때
✔ 현재의 삶에서 감사와 자족을 회복하고 싶을 때
✔ 내 인생의 시간이 너무 늦어졌다는 생각 때문에 조급할 때
✔ 하나님께 무엇을 받는 것보다 하나님 자신을 기뻐하는 신앙을 회복하고 싶을 때
🎬 원본 설교 영상
CBSJOY · 옥한흠 목사
「복을 받은 사람, 오벧에돔」
이 글은 원본 설교 전체를 대신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설교의 핵심 메시지를 이해하고 삶에 적용하는 데 도움을 드리기 위해 정리한 요약 콘텐츠입니다. 전체 메시지와 정확한 맥락은 원본 설교를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그 순간에 필요한 설교를 찾아보세요.

댓글
댓글 쓰기